무의식을 통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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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24일

2019년 11월 작성한 글입니다.

■ 오전부 수련, 공부하는 훈련

아이키도 제주오승도장은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이렇게 일주일에 세 번 오전 수련을 진행한다. 오전부에는 저녁 시간을 내기 어려운 분들이 주로 찾아온다.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분들, 그리고 일의 특성상 저녁에 일을 해야 하는 분들이 하루를 시작하기 전 도장에 나와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오전 수련에는 한 가지 조건이 따른다. 수련이 끝나면 대부분의 회원이 곧바로 오후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전부에서는 체력을 모두 쏟아붓는 강도 높은 훈련보다는, 동작 하나하나를 천천히 뜯어보고 이해하는 ‘공부하는 형태’의 훈련을 많이 하게 된다. 너무 힘들게 운동하면 오후의 일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흔히 낙법이라고 부르는 우케미(受身) 수련을 진행했다. 우케미는 넘어지고 구르며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지키는 기술이다.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이키도 수련 전체의 바탕이 되는 매우 중요한 기본기다.

■ 몸에 밴 습관이라는 벽

우케미를 수련하다 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예전에 다른 운동이나 무술을 해 본 사람일수록 기존에 배운 스타일에서 벗어나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반복해 온 동작은 이미 몸에 깊이 새겨져 있어서, 새로운 방식으로 구르려 해도 예전의 습관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다.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고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막상 매트 위에서 몸을 던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익숙한 동작이 먼저 나와 버린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무척 답답해하고 어려워한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동작을 의식으로 통제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 아이키도가 추구하는 핵심이 담겨 있다.

■ 공격성을 다스리는 무술

아이키도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격적인 성향을 통제하는 데 있다.

일반적인 무술 수련은 무의식 중에 드러나는 공격적 성향이나 방어적 성향을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활용하고, 상대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을 지켜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타격기는 상대의 공격을 피한 뒤 상대를 가격하는 움직임이 대표적이고, 유술 계통은 상대의 공격에 맞춰 상대를 던지거나 관절을 꺾어 제압하는 움직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아이키도는 조금 다른 길을 걷는다. 무의식중에 표현되는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성향을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 조화시키고, 결국 상대의 공격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상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공격 자체가 의미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키도의 기술은 어떻게 보면 현실적이지 않은, 이상적인 움직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이상적인 움직임 때문에 아이키도의 실전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원리로 구성된 아이키도의 동작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 무의식을 통제한다는 것

아이키도는 철저한 방어 무술이다.

상대의 공격에 똑같이 공격적인 태도로 맞서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올라오는 공격성을 스스로 통제하여 나를 보호하고, 나아가 나를 공격하는 상대까지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다른 어떤 무술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아이키도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물론 이 특징을 실제 움직임으로 표현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는 상황 자체가 일상적이지 않은데, 그런 상황에서 나를 공격하는 상대마저 보호한다는 것은 더더욱 평범한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강하게 누르고 제압하려는 동작과 마음이 생겨난다.

무의식적으로 상대에게 적개심을 품게 되면, 그 적개심은 결국 상대에게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상처를 남긴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에게 상처가 되는 말과 행동을 해 버리곤 한다. 일부러 상처를 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다.

이것은 도장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상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말 한마디와 무심한 행동 하나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또 받는다. 매트 위에서 무의식을 다스리는 연습은 곧 삶 속에서 나를 다스리는 연습이기도 하다.

■ 우케미가 가르쳐 주는 것

그렇다면 왜 하필 우케미일까. 우케미는 기술을 받는 사람, 즉 던져지는 쪽의 수련이다. 상대의 힘에 맞서 버티는 대신 그 흐름을 받아들이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몸을 부드럽게 말아 안전하게 일어나는 법을 배운다. 힘으로 버티려는 마음이 앞서면 몸은 굳고, 굳은 몸은 쉽게 다친다.

그래서 우케미는 단순히 잘 넘어지는 기술이 아니라, 긴장과 저항이라는 무의식적인 반응을 내려놓는 훈련이다. 상대의 힘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비로소 상대의 힘을 이끌 수도 있다. 잘 받는 사람이 잘 던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오전부처럼 차분하게 동작을 공부하는 시간은 이런 감각을 천천히 몸에 새기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다.

우케미 훈련중인 여성회원

■ 반복에 의한 학습

오늘 오전, 우케미를 훈련하던 한 회원이 스스로를 책망하듯 이렇게 말했다.

“머리로는 의식하고 있는데, 왜 몸이 말을 안 들을까요? 저는 참 바보 같아요.”

그리고 잠시 뒤 이렇게 덧붙였다.

“잘될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아요.”

그 회원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반복을 통해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조금씩 변하고, 그렇게 변한 마음과 행동이 쌓이면 결국 무의식까지 의식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몸에 밴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습관은 그만큼의 시간과 반복을 들여야 비로소 새로운 습관으로 바뀐다. 오늘 한 번 제대로 구르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바보라고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자신의 습관을 알아차렸다는 것 자체가 변화의 첫걸음이다. 알아차리지 못한 습관은 고칠 수 없지만, 알아차린 습관은 반복을 통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어제보다 한 번 더 의식하고, 한 번 더 구르는 것. 수련은 그렇게 조금씩 쌓여 간다.

■ 매트 위의 수련이 삶으로 이어질 때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무의식적으로 말을 한다. 그리고 그 말과 행동 때문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나쁜 습관은 반복에 의한 학습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넘어지는 법을 반복해서 익히듯, 상대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도 반복해서 다듬을 수 있다. 아이키도는 바로 그런 운동이며, 그런 무술임에 틀림없다. 오늘도 오전부 회원들은 몇 번이고 매트 위를 구르며, 자신의 무의식과 마주하는 연습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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